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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가? : 마태복음 18장이 말하는 관계와 용서의 복음

by arimahan 2026. 3. 25.

2026년 3월 25일 수요일

오늘은 마태복음 18장을 읽고 묵상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은 흔히 '교회 담론(Ecclesiological Discourse)'이라 불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을 주신 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 위대한 관계의 원리를 세 가지 핵심 소제목으로 나누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낮아짐의 미학: 천국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자들의 것

 

제자들의 질문은 지극히 세속적이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물음 속에는 서열과 권력, 그리고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낮은 곳을 향하는 겸손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법적 권리가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가장 무력한 존재를 상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모델로 제시하신 이유는 그들이 가진 '의존성'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부양할 능력이 없기에 전적으로 부모를 신뢰하고 의지합니다. 이처럼 천국에서 큰 자는 자신의 업적이나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갈망하는 '영적 어린아이'입니다.

 

작은 자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예수님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영적으로 연약하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자'가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우리는 곁에 있는 '작은 자'를 밟고 올라가거나 무시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천국의 논리는 정반대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보듬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귀한 자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가? : 마태복음 18장이 말하는 관계와 용서의 복음

 

잃어버린 양을 향한 열정: 정죄보다 '회복'이 우선인 사랑

 

마태복음 18장의 중심부에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은 인간의 효율성이나 경제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계산법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추적
길을 잃은 양은 스스로 돌아올 힘이 없습니다. 목자가 직접 험한 산을 넘고 가시덤불을 헤쳐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실족하거나 죄의 길로 들어섰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잘못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방관하거나 비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수고가 천국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공동체의 권면: 형제를 얻는 과정
예수님은 구체적인 권면의 절차도 가르쳐 주십니다. 만약 형제가 죄를 범했다면, 먼저 일대일로 가서 권고하고, 듣지 않으면 두세 증인과 함께 가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의 이름으로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이 엄격해 보이는 절차의 목적은 '심판'이나 '출교'가 아닙니다. 바로 '그 형제를 얻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영혼을 포기하지 않고 공동체의 품으로 돌려보내려는 처절한 사랑의 몸부림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 그 목적이 정말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끝없는 용서의 신비: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의 의무

 

베드로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당시 유대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일곱 번은 대단히 관대한 횟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베드로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는 횟수의 제한을 두지 말고 무한히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의 깊이
이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드십니다. 일만 달란트는 당시 노동자의 수만 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개인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임금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 엄청난 빚을 단번에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죄 사함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감옥
문제는 그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약 100일 치 임금) 빚진 동료를 만나자마자 그의 멱살을 잡고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백 데나리온은 먼지보다 작은 금액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일만 달란트'의 용서를 받았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를 구할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미 상상할 수 없는 용서를 받았기에 마땅히 흘려보내야 할 '거룩한 채무'인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가 원망과 증오라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은 우리에게 단순한 도덕적 훈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천국 가치관으로의 대전환'을 요구합니다.

내가 더 커지려 하지 말고 기꺼이 낮아지십시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밀어내지 말고 잃어버린 양을 찾듯 다가가십시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정죄하기 전, 십자가에서 나의 일만 달란트 죄를 씻어주신 그 사랑을 먼저 묵상하십시오.

블로그 독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이 만나는 그 '작은 자'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일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베푸는 그 한 번의 용서가 누군가에게는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안의 어린아이를 회복하고, 넉넉한 용서의 마음으로 주변을 밝히는 진정한 '천국의 큰 자'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